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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소방관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백일된 딸을 남겨둔 채[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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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관리자 작성일22-08-10 16:24 조회72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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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방관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백일된 딸을 남겨둔 채[산화,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①


어린이날 하루 전 몸을 가누기도 힘든 강풍이 불었다.
철제 구조물이 떨어져 도로에 나뒹구는 위험한 현장.
인명 피해를 막으려고 출동한 소방관 남편이 바람에 날아온 구조물에 머리를 다쳐 세상을 떠났다.
100일 된 딸과 아내 박현숙이 남겨졌다.
그녀는 눈물을 참아냈다. 대신 발버둥 쳤다.
그저 평범하게, 남들과 다르지 않게 딸을 키우고 싶다.
허승민 소방위의 6주기인 5월 12일 국립대전현충원 소방관 묘역을 찾은 아내 박현숙(위)과 딸 소윤.
사고가 발생한 지 정확히 6년이 되는 날이었다. 박현숙은 원주 시내의 한 플라워카페에 도착했다. 분홍색 스웨터에 하얀 운동화, 밝은 고동색의 단발머리. 밝고 환한 카페 분위기와 현숙의 모습은 묘하게 닮아 있었다.

“코로나19 백신도 다 맞았는데, 마스크 벗어도 괜찮죠?”

현숙이 마스크를 내리며 물었다. 분홍빛의 입술 화장과 옅은 볼 터치가 눈에 들어왔다.

“궁금한 거는 편하게 물어보세요. 다 물어보셔도 돼요.”

간단한 소개가 오가고 몇 개의 질문과 답이 이어졌다. 현숙은 기자가 질문을 빙빙 돌리고 있다는 것을 알아챈 것 같았다.

“제가…. 뭔가 이상해 보이죠?”

침묵이 이어졌다. 기자는 대답할 단어를 고르지 못했다.

“보통 소방관의 유가족이면 눈물 흘리고, 좀 어두울 것 같은데…. 그렇죠?”

현숙이 창밖으로 고개를 돌렸다. 건너편 공원에서 살랑살랑 부는 봄바람에 푸른 나뭇잎이 흔들렸다. 그녀가 유리잔을 들어 남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모두 비워냈다. 분홍 립스틱이 유리잔에 묻어났다. 분홍색이 희미해진 입술은 두어 번 달싹였다. 현숙이 나지막이 말을 이어갔다.

“근데 그건 모르실 거예요. 이렇게 지낼 수 있을 때까지 진짜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거센 바람이 불어닥쳤다
허승민 소방위가 생전에 착용했던 시계(왼쪽)와 소방복에 붙어 있던 그의 명찰.
휘이이잉.

창문 너머로 바람 부는 소리가 들렸다. 침대에 누워 있던 현숙이 오른팔을 뻗어 옆자리를 쓸어보았다. 야간 근무를 나간 남편은 자리에 없었다.

아직 어두운 밤이었다. 별안간 휴대전화 벨 소리가 울렸다. 잠이 든 소윤이 그 소리에 깰까 놀란 현숙은 부리나케 전화를 받았다. 소윤 아빠였다.

“형수님, 허승민 부장님이 크게 다치셨거든요. 지금 당장 병원에 와보셔야 할 것 같아요.”

분명 소윤 아빠 번호였는데 휴대전화에선 낯선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새벽 2시에 걸려온 전화에 다급한 말투. 현숙은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현숙은 다시 휴대전화를 집어 들었다.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분주히 손가락을 움직였다. 오빠에게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다. 동서에겐 집으로 와서 소윤을 돌봐 달라고 했다.

시동생이 모는 차를 타고 현숙은 병원으로 향했다. 바깥은 여전히 강한 바람이 불고 있었다. 빗방울도 떨어져 운전석 시야를 가렸다. 집에서 태백병원까지는 15분이 걸렸다.

현숙의 입이 바짝 타들어 갔다. 그때 전화 벨 소리가 또다시 울렸다. 먼저 병원에 가달라고 부탁했던 오빠였다. 전화를 받자마자 오빠는 울먹였다. 현숙은 상황을 물어볼 용기를 내지 못했다. 전화기 너머로 흐느끼는 소리만 들렸다.

‘아, 큰일 났구나. 끝이구나.’

병원에 도착하기 전 현숙은 마음의 준비를 시작했다. 응급실에 누워 있는 남편. 눈은 감았지만 심장은 쿵쿵거리며 뛰고 있었다. 의사들에게 남편을 살려 달라고 애원했다. 남편을 구급차와 헬기에 태우고 서울에 있는 대형 병원으로 향했다. 그곳에서도 의사들은 모두 고개를 저었다. 뇌사였다. 현숙은 아무것도 해보지 못한 채 태백으로 돌아왔다.

정신없는 하루가 지났다. 다음 날은 5월 5일, 어린이날이었다. 현숙은 중환자실에 누워 있는 남편을 보며 빌었다.

“소윤 아빠, 오늘 어린이날이야. 당신이 오늘 떠나면 우리 소윤이는 어린이날이 없는 거잖아. 오늘만큼은 버텨 줘요. 제발.”

이런 생각을 하는 자신이 이기적인가 싶었다. 그래도 이날만큼은 아니었으면 했다.

5월 12일 현충원 묘역에서 허승민 소방위 묘비 앞에 놓은 사진을 정돈하는 박현숙(오른쪽)과 가족들.
“저기, 황지동에 사는 소방관 있잖아. 재작년에 결혼한…. 크게 다쳐서 입원했다던데?”

오정미는 동네 사람들이 떠드는 얘기를 헛소문으로 여겼다. 그런데 친구 현숙에게선 아무 연락이 없었다. 불안했다.

정미는 아침 일찍 승민이 입원해 있다는 태백병원으로 향했다.

‘진짜 소윤 아빠면 어떡하지. 현숙을 만나면 뭐라 하지.’

신호 대기를 하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정미의 눈앞에 낯익은 차량이 보였다. 현숙의 차였다. 평소 같았으면 경적이라도 울렸을 텐데, 그럴 수가 없었다. 그녀의 뒤를 무심코 따랐다. 병원 주차장에 들어온 현숙이 정미를 발견했다. 곧이어 눈물이 터졌다. 둘은 아무 이야기도 할 수 없었다. 눈가에 눈물을 가득 머금은 현숙이 먼저 입을 뗐다.

“나 때문이야. 내 팔자가 세서 소윤 아빠한테 이런 일이 생긴 거 아닐까?”

현숙은 말을 잇지 못하고 눈물만 쏟아냈다. 정미는 올라오는 감정을 억누르며 그녀를 끌어안았다. 현숙이 정미 앞에서 흘린 처음이자 마지막 눈물이었다.

승민을 데려간 건 바람이었다. 그날 태백에선 몸을 가누기도 쉽지 않을 정도로 강한 바람이 불었다. 바람을 뚫고 승민과 동료 소방관들이 출동했다. 3층 연립주택을 덮고 있던 강판 지붕이 강풍 탓에 뜯겨 나갔다는 신고였다.

거대한 구조물이 연립주택 주변 도로를 나뒹굴었다. 나이가 지긋한 주민들이 불안해했다. 강판이 또 한 번 바람에 날려 주택을 덮치면 사람이 다칠 수도 있었지만 현장을 수습할 인원이 부족했다. 결국 구급차를 운전하던 승민까지 나섰다. 그때 연립주택 지붕에 남아 있던 구조물 일부가 갑자기 날아왔다. 하필이면 승민의 머리 위였다. 헬멧도 그를 지켜주진 못했다. 불과 10초 만에 벌어진 일이었다.

현숙은 사고 장면이 담긴 영상을 보지 않았다. 한 주민이 “그저 감사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어 가슴이 아프다”는 글을 소방서 홈페이지에 올렸지만, 현숙은 읽지 못했다.

며칠이 지나도 승민은 눈을 뜨지 못했다. 낮에 승민을 보러 병원에 갔다가, 밤에는 소윤을 재우러 집에 오는 생활이 이어졌다. 시어머니가 먼저 말을 꺼냈다.

“이 아이의 생이 여기까지면, 연명치료고 뭐고 더 할 것 없이 여기서 끝내자. 긴 병에는 장사가 없다.”

현숙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시어머니의 말은 이상하리만치 차분했다.

“어머니, 그래도…. 뭐라도 더 해야죠. 하는 데까지는 해봐야죠.”

현숙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지만 시어머니는 단호했다.

“계속 이 아이가 누워 있으면… 네가 소윤이 데리고 어떻게 병원 왔다 갔다 하면서 살아갈 거냐. 결국 너희만 힘들어진다.”

젊은 시절 남편을 여의고 호떡 장사를 하며 삼남매를 홀로 키운 시어머니. 그렇게 그녀는 자신의 손으로 아들의 연명치료 중단을 제안했다. 남편에 이어 장남까지 먼저 떠나보내는 시어머니의 심정을 현숙은 감히 헤아릴 수 없었다.

“떠날 운명이면, 그냥 떠나도록 해주는 게 맞다.”

감정을 꾹꾹 누른 시어머니에게 현숙은 더는 대꾸하지 못했다. 머리로는 이해할 수 있었는데, 마음으로는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딸이 태어난 지 100일 만에 남편을 떠나보내야 하는 자신의 운명이 참으로 가혹하단 생각이 들었다.

허승민 소방위와 아내 박현숙이 푸껫 신혼여행에서 산 지갑. 현숙은 딸 소윤이 더 자라면 보여주려 남편의 신분증 등이 담긴 지갑을 간직하고 있다.
현숙은 처음으로 아이를 안고 남편이 있는 중환자실에 들어갔다. 소윤에게 아픈 아빠의 모습은 보여주고 싶지 않았다. 딸아이가 이 순간을 기억하진 못하겠지만 그래도 슬픈 기억을 남겨주고 싶지는 않았다.

마흔이 넘은 나이에 아이를 얻은 승민은 누구보다도 소윤을 사랑했다. 소윤의 출생 예정일을 1월 19일로 통보받았을 때 ”역시 소방관 딸“이라며 웃던 남편. 소윤이 침을 흘리면 웃으며 그것을 받아먹던 소윤 아빠. 딸아이의 첫 옹알이도, 첫 뒤집기도 모두 승민과 함께였다. 사고 전날에도 승민은 119센터로 출근하기 직전까지 소윤을 품에서 내려놓지 못했다. 현숙은 눈을 감고 있는 승민을 바라보았다. 소윤은 그녀의 품 안에서 입을 달싹거리며 옹알이를 했다. 현숙은 지그시 승민의 손을 잡았다.

‘소윤 아빠, 날씨가 참 좋다? 소윤이 유모차 태우고 당신이랑 공원 놀러 가고 싶은데. 이제는 진짜 같이할 수가 없네….’

5월 12일 오전 8시 12분. 승민은 현숙과 소윤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강원 태백시 순직 소방인 추모비에 새겨진 허승민 소방위의 이름.


살기 위해 흘리지 않은 눈물

승민이 세상을 떠났다는 소식이 뉴스에서 나왔다. 승민과 현숙 사이에 100일 된 딸이 있다는 사실도 알려졌다. 다른 이들이 소윤을 동정하는 게 현숙은 싫었다. 빈소를 꾸리기 전, 현숙은 어린이집 직장 동료이자 친구인 김진영에게 소윤을 부탁했다.

“진영아, 장례식장에 소윤이 데리고 오지 말아 줘.”

현숙이 알리지 않았는데도 장례식장에는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은 빈소에 머물렀다. 현숙과 다른 가족들이 울며 슬퍼하는 모습을 열심히 담았다.

승민의 영정 사진 앞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있는 현숙의 귀에 기자들이 하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그들은 소윤을 찾고 있었다.

“갓난아이가 있다고 들었는데, 왜 안 보이지?”

현숙은 진영에게 다시 전화해 재차 당부했다.

“진영아, 소윤이 절대로 장례식장에 데리고 오지 말아 줘.”

별다른 설명이 없어도 진영은 느낄 수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아이를 동정하지 않았으면 하는 현숙의 마음을. 진영은 ”알겠다“며 현숙을 안심시켰다.

박현숙(오른쪽)이 묘비 앞에서 딸 소윤을 안고 남편을 이야기하고 있다.

검정 정복을 입은 승민의 동료들도 다녀갔다. 그들은 빈소에 들어서자마자 울음을 그치지 못했다. 현숙이 먼저 그들을 달래기 시작했다.

출처 : 동아일보, 소방관 남편이 세상을 떠났다…백일된 딸을 남겨둔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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